우리 역사상 풍부하고 위대하며 심오한 사상의 맥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통하여 단절되었다

역사를 올바로 안다는 것은 이렇게 잃어버린 위대한 것들에 대한 회복의 가치도 지닌다

삼권분립의 개념은 몽테스키외(C.S.Montesquieu 1689~1755)의 <법의 정신>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국회의 독립된 기능은 헌법의 기본 정신이다.

우리나라 국회의 수준은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을 반영한다. 국회는 대화와 설득의 장이지 투쟁의 장이 아니다.

한영우(韓永雨 1938~)

서울대학교 사학과 출신의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장을 거쳐 현재 명예교수. <정도전 사상의 연구 1973>로 삼봉학 개척

이익주(李益柱 1962~)

서울대학교 국제사학과(졸). 박사학위논문 <고려 원 관계의 구조와 고려 후기 정치체제>.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정도전 관련 논문 발표

 

공민왕(恭愍王 1330~1374)

고려 제31대 왕 재위 기간은 1351~1374년. 왕위에 오른 뒤 신돈을 등용하여 원나라를 배척하고 친원파인 기씨(奇氏) 일족을 제거하였고, 쌍성총관부를 폐지하였으며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였으며 경제를 개혁하고 성균관을 중심으로 유교를 진흥시킴. 노국공주와의 로맨스로도 유명함.

공민왕 통치 당시는 원나라(몽골)의 지배 하에 있었다. 1356년에 공민왕은 정동행성(征東行省)을 폐지하고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철폐한다. ㅇ 때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신돈 (辛旽, ? ~ 1371)

승명은 편조(遍照). 공민왕 14년에 국사로 등용되어 토지와 노비를 돌려 주는 등 과감한 개혁정책을 폈다. 그에 관한 항간의 나쁜 소문은 모두 그의 개혁을 왜곡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다. 정도전 개혁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개혁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고 개혁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 즉 개혁담당의 주체세력이 확실해야 한다.

공민왕은 과거를 통하여 임박, 정몽주, 김구용, 이숭인, 윤소동, 박상충, 정도전 등 젊은 엘리트를 대거 진출시켰다.

말하자면 신진 유생(성리학자)들을 개혁의 주체세력으로 삼아 궁극적으로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로 만들게 되었다.

이색(李穡 1328~1396)

고려말 성리학의 대학자. 원나라 국자감에서 공부하였고 한림원에까지 등용되었다.

고려말 개혁을 주도한 엘리트들의 큰 스승이었다.

신진 유생들은 상대적으로 고려사화에서 확고한 토지기반을 가진 계층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개혁에 보다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개혁을 시도한 사람은 그 개혁이 완성됨으로써 역할을 다 하는 것.

홍윤 등에 의해 공민왕이 처참한 최후를 맞은 후, 우왕을 옹립한 권세가들은 기존의 배원친명(排元親明)정책을 파기하고 다시 원나라와의 관계를 도모하였고, 이 것은 결국 개혁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신진 유림 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답전보(答田父) 1/4>

당시 유림들 중 가장 개혁의 목소리가 높고 강직했던 정도전의 나주 유배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정도전의 배원 성향은 우왕 원년의 원나라 사신 영접 일화에 잘 나타나 있다. 원의 사신을 영접하라는 명을 받자 정도전은 "내가 사신의 목을 베어 오거나 아니면 체포하여 명나라로 보내겠다"고 할 정도였다.

조선 개국 혁명의 주도자가 누구인가의 문제가 잠재된 채로 겉으로 드러난 이방원과 정몽주의 갈등은 '사병혁파' 과정에서 극을 달리다가 결국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1398년 태조 7년 8월 26일 서울 송현(松峴)의 늦은 밤에 정몽주가 피살되고 만다,

고려사회는 다양성을 추구했다. 유교, 불교, 도교 등 모든 사상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고려말 지식인들의 사상적 깊이는 조선왕조 성리학 일변도의 사상가들 보다 더 심오할 수도 있었다.

그 중 삼봉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패러다임을 창출한 위대한 사상가이다.

이 위대하고 풍부한 사상의 맥은 안타깝게도 식민지배라는 과정을 통하여 단절이 생기게 된다.

일제식민지 역사는 우리사회의 많은 근대적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지만 그 변화가 가치적으로 긍정될 수는 없다. 그것은 자기 배반의 역사이고 단절이며, 반성되어야만 하는 왜곡의 역사였다.

답전보(答田父) 해설 계속

"네놈은 필시 장수라, 평시에는 거드름과 공갈로 지새우며 상전의 비위나 맞추다가 전쟁이 나면 접전이 되기도 전에 도망쳐 백성의 생명을 적의 칼날에 버려두고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는 놈이로구나"

"그게 아니라면 네 놈이 재상의 신분이지만 괴팍하여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아첨하고 추종하는 놈은 벼슬을 주고 바른 소리는 듣지 않고 바른 사람은 배척하고.."

<답전보(答田父) 2/4>

"법을 농단하여 사리사욕을 채움으로 그 악(惡)이 무르익은, 앉아서 죄를 지은 놈이구나"

삼봉 왈 "그건 아니올시다.."

"그렇다면 알겠다. 네 놈은 힘이 부족한 것도 헤아리지 못하고 큰소리만 치고 때를 살피지 못하고 직언만 좋아하고 이 시절을 살면서 옛 것만 숭상하고 윗 사람에 거역하길 좋아하는 놈이로구나."

<답전보(答田父) 3/4>

삼봉의 답전보는 논어(論語) 미자편(微子篇)과도 한 맥을 이루는 대단한 철학이 있는 문학 세계이며.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답전보(答田父) 4/4>

 

답전보(答田父) 전문(全文) 해설 

 

寓舍卑側隘陋(우사비측애루) :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낮고 기울고 좁고 더러워서

心志鬱陶(심지울도) : 마음이 우울하고 답답했다

一日出遊於野(일일출유어야) : 하루는 들에 나가 노닐다가

見一田父(견일전부) : 농부 한 사람을 보았는데

眉皓首(방미호수) : 눈썹이 기다랗고 머리가 희고

泥塗霑背(니도점배) : 진흙이 등에 묻었으며

手鋤而耘(수서이운) : 손에는 호미를 들고 김을 매고 있었다

予立其側曰(여립기측왈) : 내가 그 옆에 다가서서 말하기를

父勞矣(부노의) : 노인장 수고하십니다

田父久而後視之(전부구이후시지) : 농부는 한참 후 나를 보더니

置鋤田中(치서전중) : 호미를 밭이랑에 두고는

行原以上(행원이상) : 언덕으로 걸어올라와

兩手據膝而坐(양수거슬이좌) :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앉으며

予而進之(이여이진지) : 턱을 끄덕이어 나를 오라고 했다

予以其老也(여이기노야) : 나는 그가 늙었기 때문에

趨進拱立(추진공립) : 추창해 가서 팔짱을 끼고 섰더니

田父問曰(전부문왈) : 농부가 묻기를

子何如人也(자하여인야) :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

子之服雖(자지복수폐) : 그대의 의복이 비록 해지기는 하였으나

博袖(장거박수) : 옷자락이 길고 소매가 넓으며

行止徐徐(행지서서) : 행동거지가 의젓한 것을 보니

其儒者歟(기유자여) : 혹 선비가 아닌가?

手足不胼胝(수족부변지) : 또 수족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腹(풍협파복) : 뺨이 풍요하고 배가 나온 것을 보니

其朝士歟(기조사여) : 조정의 벼슬아치가 아닌가?

何故至於斯(하고지어사) :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가?

吾老人(오노인) : 나는 노인이며

生於此老於此(생어차노어차) : 여기서 나서 여기에서 늙었기 때문에

荒絶之野(황절지야) : 거친 들과

窮僻瘴癘之鄕(궁벽장려지향) : 장기()가 가득찬 궁벽한 시골에서

魅之與處(리매지여처) : 도깨비와 더불어 살고

魚鰕之與居(어하지여거) : 물고기와 더불어 사는 처지가 되었지만

朝士非得罪放逐者不至(조사비득죄방축자부지) : 조정의 벼슬아치라면 죄를 짓고 추방된 사람이 아니면 여기에 오지 않는데

子其負罪者歟(자기부죄자여) : 그대는 죄를 지은 사람인가?

曰然(왈연) : 그러합니다

曰何罪也(왈하죄야) : 무슨 죄인가?

豈以口腹之奉(개이구복지봉) : 아니 구복(口腹)의 봉양과

妻子之養(처자지양) : 처자의 양육과

車馬宮室之故(차마궁실지고) : 거마(車馬)ㆍ궁실(宮室)의 일로써

不顧不義(부고부의) : 불의(不義)를 돌아보지 않고서

貪欲無厭以得罪歟(탐욕무염이득죄여) : 한없이 욕심을 채우려다가 죄를 얻은 것인가?

抑銳意仕進(억예의사진) : 아니면 벼슬을 꼭 해야겠는데

無由自致(무유자치) : 스스로 이를 능력이 없어서

近權附勢(근권부세) : 권신을 가까이하고, 세도에 붙어

奔走於車塵馬足之間(분주어차진마족지간) : 거진 마족(車塵馬足)의 사이에 분주하면서

仰哺於殘杯冷炙之餘(앙포어잔배냉자지여) : 찌꺼기 술이나 먹고, 남은 고기 같은 것을 얻어 먹으려고

聳肩笑(용견도소) :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을 떨며

苟容取悅(구용취열) : 구차하게 즐거움을 취하는 데에

一資或得(일자혹득) : 애를 썼기 때문에 어쩌다가 한 자급(資級)을 얻으니

衆皆含怒(중개함노) : 여러 사람이 모두 성을 내어

一朝勢去(일조세거) : 하루 아침에 형세가 가버려서

竟以此得罪歟(경이차득죄여) : 결국 이렇게 죄를 얻게 된 것인가?

曰否(왈부) : 그런 게 아닙니다

然則豈端言正色(연칙개단언정색) : 그러면 어찌 말을 단정하게 하고 얼굴 빛을 바르게 하여

外示謙一本作廉(외시겸일본작염) : 겉으로 겸손한 체하여 (어떤 본에는 겸(謙)이 염(廉)으로 되었음)

退盜竊虛名(퇴도절허명) : 물러나서는 헛된 이름을 훔치고

昏夜奔走(혼야분주) : 어두운 밤에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作飛鳥依人之態(작비조의인지태) : 새가 사람에게 의지하는 태도를 지어

乞哀求憐(걸애구련) : 애걸하고, 가엾게 보여

曲邀橫結(곡요횡결) : 굽게 결탁하고 횡으로 맺아

釣取祿位(조취록위) : 녹위(祿位)를 낚아서

或有官守(혹유관수) : 혹 관수(官守)에 있거나

或居言責(혹거언책) : 혹 언책(言責)을 맡거나

徒食其祿(도식기록) : 녹만을 먹고

不思其職(부사기직) : 그 직책은 돌아보지 않으며

視國家之安危(시국가지안위) : 국가의 안위와

生民之休戚(생민지휴척) : 생민(生民)의 휴척(休戚)과

時政之得失(시정지득실) : 시정(時政)의 득실과

風俗之美惡(풍속지미악) : 풍속의 미악(美惡)에 있어서는

漠然不以爲意(막연부이위의) : 막연히 뜻을 두지 않아

如秦人視越人之肥瘠(여진인시월인지비척) : 진나라 사람이 월나라 사람의 살찌고 여원 것 보듯이 하며

以全軀保妻子之計(이전구보처자지계) : 자기 몸만 온전히 하고 처자를 보호하는 계책으로

偸延歲月(투연세월) : 세월을 보내다가

如見忠義之士不顧身慮(여견충의지사부고신려) : 만일 충의지사(忠義之士)가 있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以赴公家之急(이부공가지급) : 국가의 급한 일에 나아가

守職敢言直道取禍(수직감언직도취화) : 직분을 지키고 바른말을 하거나 곧은 도를 행하다가 화를 당하게 된 것을 보면

則內忌其名(칙내기기명) : 안으로는 그 이름을 꺼리고

外幸其敗(외행기패) : 밖으로는 그 패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

誹謗侮笑(비방모소) : 비방하고 비웃으며

自以爲得計(자이위득계) : 스스로 계책을 얻은 듯하였다

然公論騰(연공론훤등) : 그러나 공론이 비등하고

天道顯明(천도현명) : 천도가 무심하지 않아

詐窮罪覺以至此乎(사궁죄각이지차호) : 그만 간사한 것이 드러나고 죄가 발각되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가?

曰否(왈부) : 그것도 아닙니다

然則豈爲將爲帥(연칙개위장위수) : 그렇다면 장수가 되어서

廣樹黨與(광수당여) : 널리 당파를 만들어

前驅後擁(전구후옹) : 앞에서 몰고 뒤에서 옹위하며

在平居無事之時(재평거무사지시) : 아무 일도 없을 때에는

大言恐唱(대언공창) : 큰 소리로 공갈을 쳐서

希望寵錫(희망총석) : 왕의 은총을 받아

官祿爵賞(관록작상) : 관록(官祿)과 작상(爵賞)을 뜻대로 이루어

惟意所恣(유의소자) : 자만심이 가득차고

志滿氣盛(지만기성) : 기운이 성하여

輕侮朝士(경모조사) : 조사(朝士)들을 경멸하다가

及至見敵(급지견적) : 적군을 만나게 되면

虎皮雖蔚(호피수울) : 범 가죽은 비록 아름답지만

羊質易慄(양질역율) : 본질이 양이라 겁을 잘 내어

不待交兵(부대교병) : 교전을 하지 않고

望風先走(망풍선주) : 적의 풍진(風塵)만 보아도 먼저 달아나

棄生靈於鋒刃(기생령어봉인) : 생령(生靈)을 적의 칼날에 버리고

誤國家之大事(오국가지대사) :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기라도 하였는가?

否則豈爲卿爲相(부칙개위경위상) : 아니면 경상(卿相)이 되어서

狼愎自用(낭퍅자용) : 제 마음대로 고집을 세우고

不恤人言(부휼인언) : 남의 말은 듣지 않으며

己者悅之(녕기자열지) : 자기에게 아첨하는 이는 즐거워하고

附己者進之(부기자진지) : 자기에게 붙는 이는 들어 쓰며

直士抗言則怒(직사항언칙노) : 곧은 선비가 말을 거스르면 성을 내고

正士守道則排(정사수도칙배) : 바른 선비가 도를 지키면 배격하며

竊君上之爵祿爲己私惠(절군상지작록위기사혜) : 임금의 작록(爵祿)을 훔쳐 자기의 사사 은혜로 만들고

弄國家之刑典爲己私用(농국가지형전위기사용) : 국가의 형전(刑典)을 희롱하여 자기의 사용으로 삼다가

惡稔而禍至(악임이화지) : 악행이 많아 화가 이르러

坐此得罪歟(좌차득죄여) : 이러한 죄에 걸린 것인가?

曰否(왈부) : 그것도 아닙니다

然則吾子之罪(연칙오자지죄) : 그렇다면 그대의 죄목을

我知之矣(아지지의) : 나는 알겠도다

不量其力之不足而好大言(불량기력지부족이호대언) : 그 힘의 부족한 것을 헤아리지 않고 큰소리를 좋아하고

不知其時之不可而好直言(부지기시지부가이호직언) : 그 시기의 불가함을 알지 못하고 바른말을 좋아하며

生乎今而慕乎古(생호금이모호고) : 지금 세상에 나서 옛사람을 사모하고

處乎下而拂乎上(처호하이불호상) : 아래에 처하여 위를 거스른 것이라면

此豈得罪之由歟(차기득죄지유여) : 이것이 어찌 죄를 얻은 원인이 아니리오

昔賈誼好大(석가의호대) : 옛날 가의(賈誼)가 큰소리를 좋아하고

屈原好直(굴원호직) : 굴원(屈原)이 곧은 말을 좋아하고

韓愈好古(한유호고) : 한유(韓愈)가 옛 것을 좋아하고

關龍逢好拂上(관룡봉호불상) : 관용방(關龍)이 윗사람에게 거스르기를 좋아했다

此四子皆有道之士(차사자개유도지사) : 이 네 사람은 다 도(道)가 있는 선비였는데도

或貶或死(혹폄혹사) : 혹은 폄직(貶職)되고 혹은 죽어서

不能自保(부능자보) : 스스로 자기 몸을 보전하지 못하였거늘

今子以一身犯數忌(금자이일신범수기) : 그대는 한 몸으로서 몇 가지 금기(禁忌)를 범하였는데

僅得竄逐(근득찬축) : 겨우 귀양만 보내고

以全首領(이전수령) : 목숨은 보전하게 하였으니

吾雖野人(오수야인) : 나 같은 촌사람이라도

可知國家之典寬也(가지국가지전관야) : 국가의 은전이 너그러움을 알 수가 있도다

子自今其戒之(자자금기계지) : 그대는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면

庶乎免矣(서호면의) : 화를 면하게 될 것이오

予聞其言(여문기언) : 나는 그 말을 듣고서

知其爲有道之士(지기위유도지사) : 그가 도가 있는 선비임을 알았다

請曰(청왈) : 그리하여 청하기를

父隱君子也(부은군자야) : 노인장께서는 은군자(隱君子)이십니다

願館而受業焉(원관이수업언) : 객관(客館)에 모시고 글을 배우고자 합니다

父曰(부왈) : 노인이 말하기를

予世農也(여세농야) : 나는 대대로 농사짓는 사람이오

耕田輪公家之租(경전륜공가지조) : 밭을 갈아서 국가에 세금을 내고

餘以養妻子(여이양처자) : 나머지로 처자를 양육하니

過此以往(과차이왕) : 이 밖의 것은

非予之所知也(비여지소지야) : 나의 알 바가 아니오.

子去矣(자거의) : 그대는 물러가서

毋亂我(무란아) : 나를 어지럽히지 마오

遂不復言(수부부언) : 다시 말하지 않았다.

予退而歎之(여퇴이탄지) : 나는 물러나와 탄식하기를

若父者(약부자) : 저 노인 같은 분은

其沮溺之流乎(기저닉지류호) : 장저와 걸익 같은 사람이라고 하며 탄식하였다

 

 

Posted by 망중한담

서양학문의 시대, 보편적인 것을 추구했던 시대로부터 이제는 국학의 시대, 주체적 사고를 해야 할 시대가 왔다.

최근에 국내 영화계는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50%를 넘고 있다. 이 것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문 현상이다.

영화 실미도의 두 주인공, 안성기와 설경구 씨를 초대했다.

 

안성기 : 1952년생. 5살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에 아역배우로 데뷔한 후 70편이 넘는 영화를 통해 국민배우로 자리잡았다.

설경구 : 1968년생.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영화 '꽃잎'으로 영화계 입문.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부터 강렬한 성격배우로서 이미지가 각인됨. "나는 연기를 잘 모른다. 현장의 팀웤 속에서 나의 연기가 살아 날 뿐이다."

실미도사건 : 1971년 8월 23일, 한국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역사적 사실. 현대사의 굴절된 모습들이 이 사건에 얽혀 있다. 684부대는 김신조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당시 중앙정보부가 만든 특수부대였다. 31명 전원 사망. 실미도사건은 국가권력의 횡포와 역사왜곡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는 영화의 훌륭한 소재가 될만한 사건들이 많다. 하지만 정치적 속박으로 인해 예술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정치적 속박은 예술의 빈곤으로 나타난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억압되어서는 안된다.

예술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적 기능을 외면할 수 없다. 영화 '실미도'는 왜곡된 역사의 실상을 일깨우는 강렬한 도덕적 기능이 있다. 예술가의 상상력은 민주의 축복이다.

우리의 역사는 세계적인 사상가들이 기라성 같이 포진되어 있는 역사다.

우리가 '위대한 정치가'라고 할 때에 링컨이나 처칠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위대한 정치가요 사상가로 떠올려야 할 사람은 삼봉 정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도전 : 1342~1398. 조선왕조를 건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 사상가며 정치가.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支) 호는 삼봉(三峯)

처칠에게는 위대한 정치가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정치가인 삼봉 정도전은 떠올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의 비극이다.

조선왕조의 사상은 방대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6개월 동안에 다룰 수 있는 조선시대 사상은 '처음'과 '끝' 정도에 국한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 역사에서 '변혁'을 떠올리라고 하면 흔히 구한말, 개화기를 거론한다. 하지만 그 시기 만큼, 어쩌면 그보다 훨씬 큰 엄청난 변혁기가 있었다.

바로 '고려말에서 조선초로 넘어 가는 시기'야말로 구한말 개화백경(開化百景)의 격변을 능가하는 시기였다.

국가와 사회와 가족, 친족관계를 비롯하여 종교와 사상과 문화까지 모두 바뀌는 대격변의 시기였던 것이다.

혁명(革命)이라고 할 때의 혁은 간다, 완전히 바꾼다는 의미의 혁(革)으로써 주역의 49번째 괘(卦)를 말하며 정(井)괘의 다음에 온다. 서괘(序卦)는 "우물이 썩으면 물을 퍼내어 갈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역사에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건은 무엇이 있을까? 동학혁명(東學革命), 4.19혁명, 5.16 등 세가지 사건 정도가 있는 것 같다.

혁명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첫째 주체가 있어야 하고 둘째 왕조 또는 지배세력이 바뀌어야 한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고도 부르는 것인데, 왕의 성이 바뀐다는 뜻이다.

일본 역사에는 혁명이 없다. 천황제 하에서 신하의 변화만 있다.

왕의 권력과 비슷한 권력을 가진 막부의 우두머리 조차도 '왕'이라는 칭호를 쓰지 않고 '쇼군(將軍)' 즉 장군이라고 칭했다. 물론 이 쇼군은 우리나라의 '장군'과는 그 쓰임이나 의미가 전혀 달랐다. 일종의 '왕'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역사상 혁명이 없었던 일본은 연속성이라는 특징은 있지만 그만큼 부패하기도 쉬운 나라이다.

동학(東學)은 정치사적으로 명(命)을 갈지 못한 좌절된 운동이었다. 그러나 조산왕조의 가치관을 근원적으로 뒤엎은 사건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근대적 자아(自我)의 출발이었다.

5.16은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命)을 갈고자 하는 혁명의 주체세력은 바로 4.19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5.15은 4.19의 혁명정신과 주체세력으로부터 정권 만을 강취하였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하지 않고 '군사 쿠데타'라고 하는 것이다.

이색, 정몽주, 정도전, 권근, 하륜, 조준, 남은, 이숭인 등 공민왕 때 득세한 고려말 개혁파 신진유생들은 개혁정책을 주창하고 시도하였으나 계속되는 실패로 좌절하게 되었으며, 이 중 정도전의 주도로 이성계를 옹립하여 조선이 개국하게 된다.

1383년에 정몽주의 주선으로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고 1388년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1392년에 조선왕조를 개창하게 된다.

조선건국을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뚜렷한 근거는 정권교체 보다도 분명한 개혁의 의지가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건국혁명의 주도세력이었던 정도전은 1398년 태조 7년 8월에 사병혁파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에 의해 세자였던 방석과 함께 척살된다. 1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정도전의 고려사회 개혁 프로그램은 1. 토지개혁 2. 종교개혁 3. 군사개혁

3가지로 요약되는데, 이 개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도전은 끊임없는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이러한 정도전의 개혁사상은 애초에 많은 박해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삼봉 정도전은 34세 때인 1375년부터 2년간 나주목 회진현 거평부곡 소재동(消災洞)에서 유배생활을 한다(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백동마을). 이 유배생활을 통해 삼봉은 백성들의 삶을 체험하고 사회개혁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된다.

또한 '답전보' 같은 유배문학을 남긴다.

답전보(答田父) : 밭 가는 이에게 답함(애칭이나 존칭의 의미로 父를 '보'로 읽는다).

정도전의 이 유배문학은 고려말 우리 민중들의 소리를 알려 주는 귀중한 문헌이다. 600여년 전의 소리를 지금 우리가 이자리에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의 진실이요 감격이다.

유배지 생활을 통해 정도전은 지식인의 사명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 민중의 갈망하는 바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도올 김용옥은 우리 시대와 더룸어 호흡해 온 사상가이자 의사, 극작가, 교육자입니다. 고려대학교, 국립대만대학교, 일본 동경대학교,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서양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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