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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27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12강 '왕정에서 민주로'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없었다

 

조선 유교 600년의 폐습을 허무는 혁명이 절실한 때

 

 

 

사실 저는 오늘 몸이 좀 불편합니다. 입안이 헐고 혓바닥이 부어 있고 신열까지 있어서 걱정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나라가 현재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프면 '아야 아야' 하듯이 오늘은 이 병든 사태에 대해서 여러분과 ('아야 아야' 하듯이)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탄핵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요즘) 대통령 탄핵을 두고 국민 여러분들이 '부끄럽다'느니, 해외 동포들도 '부끄러운 나라가 되었다. 왜 이 나라가 이렇게 되었나? 부끄럽다'는 등의 말을 많이 합니다.

국민 여러분, 제발 탄핵 정국에 대해서 부끄럽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이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발전입니다.

 

우리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고 어린애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의 어느 날, 목사와 전도사가 가정심방을 왔는데 어머니께서 급하니까 어질러진 것을 안방에 몰아 넣은 다음 그 위를 담요로 덮어 놓고 심방을 맞이 했습니다.

(이렇게) 덮어 두고 깨끗한 채 하지 말고 치워서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터질 것은 터져야 합니다. 덮어 놓고 안 보이게 하는 것보다 벗겨 놓고 보이게 하는 것이 더 훌륭한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 역사는 부끄러울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역사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국민들은, 분노는 할지언정 절대로 동요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정직한 도덕성을 축적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의 어느 선진국가보다 선진의 정치형태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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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선적인 정치안정이 곧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의 유고시기이긴 할지라도 우리는 경제 및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고, 모든 질서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제도적으로 합리화 되어 있다는 증거이고, 이런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부끄럽다기 보다는 자랑스러움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지난번 강의 때 총선에 대한 언급을 했던 것을 두고 '도올이 또 정치적 발언을 한다'고 비난하고, 방송사들에 대해서도 지금 '탄핵정국에 대해서 방송은 하지 마라, 대법원에서 법적인 진행이 되고 있는데 왜 말을 하느냐?'고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헌법 제1장 총강 제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회의원은 권력의 주체인 국민을 대의하는 사람인데, 탄핵발의 전에 탄핵반대 국민 여론이 60%를 넘는 데도 탄핵을 했습니다.

이것은 원론적인 문제인데, 대통령이 지금 잘 못하고 있으니까 탄핵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일 경우에 그것을 대의해서 탄핵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국민이 탄핵을 원치 않는데 그것을 대의하는 사람들이 탄핵을 감행하는 것은 대의정치와 민주질서의 기본을 망각한 것입니다.

 

(나는 지금) 정치적 발언이 아니라, 헌법적 원론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입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유고사태로 되었다는 것은 어떠한 천재지변보다 더욱 엄중한 사태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헌재가 재판을 하고 있건 말건 간에,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정당한 것입니다.

 

만일 집안에 아버지가 갑자기 없어졌다면 경찰에 신고만 하고 가만히 있으란 말은 말이 되느냐? 바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총선에 파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만, '총선에 파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이야 말로 총선을 겨냥하여 탄핵 자체를 주도한 장본인들인 것입니다.

 

우리 같은 사상가들은 항상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인데, 예로부터 우리 역사에서는 그 사상가를 '선비'라 불렀습니다. 선비 사(士)자는 열(十)중의 한(一)명이다, 열의 민중을 떠받들고 있는 하나가 선비라는 뜻입니다. 이 선비는 때론 우산을 펴서 열의 민중을 군주로부터 보호하기도 하고 의견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내가 말하는) 사상가의 발언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나'라는 거울로 여러분을 비춰 보는 단순한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사상가들은 현재의 관심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사태를 전체적-역사적 맥락에서 어떻게 봐야 되는가, 이것을 어떻게 조명해야 하는가를 역사적으로 보고, 그 전체적-역사적 시각에서 볼 때에 '우리나라의 문제는 무엇이다' 하는 것일 뿐이지, 그것이 정치적 발언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실도 또한 어디까지나 엄연한 역사의 일부며, 우리 사상사의 일부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정도전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조선왕조 건국의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조선왕조 건국'이라는 것이 사상사적으로는 불교에서 유교로 변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정치적 변화라는 것은 사상적 변화가 없이는 무의미합니다. 아무리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도 자기들의 권력만 바꾸는 정치권력의 대치(代置)는 무의미한 변화일 뿐입니다. 그것은 정변일 뿐, 혁명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혁명이라는 것은 '사상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혁명입니다. 왜냐하면, 불교적 패러다임에서 조선의 유교적 패러다임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는 많은 사상가들의 유교적 패러다임에 의해서 500년을 지탱했는데, 유교라는 패러다임은 그 나름대로 장점과 단점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유교문화의 제1성취

종교(Religion)로부터 도덕(Morality)으로 탈출

 

 

유교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인간을) 고려의 불교라는 종교(Religion)로부터 조선 유교의 핵심인 도덕(Morality)으로 탈출시켰습니다. 종교적인 권위에 집착하거나 또는 종교 지도자에 의한 해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도덕적 질서를 통해서, 상식적인 인간으로서, 상식적 판단으로써 우리끼리 질서를 지키고 살자. 그것이 교육으로 가능하다'라고 하는 것이 유교의 제1명제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논하기 전에 근대에서 실학논의를 규정하는 것도 썩어빠진 짓입니다. 벌써 이러한 (위의 언급과 같은) 유교의 명제(命題)가 서구적 근대(Modernity)를 초월한다는 것은 조선왕조에서 이미 실험을 했습니다.

따라서 실학이 곧 현대라는 도식은 전혀 무의미합니다. 조선왕조 초기에 이미 실험을 했고, (그 실험에 의해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질서가 확립되었습니다.

 

유교문화의 제2성취

중앙집권적 관료체제(Centralized Bureaucracy)의 확립

 

 

(조선) 혁명의 주체세력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간에) 지배계급을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지배계급을 유지하기 위한 합리적 수단으로 과거라는 객관적 시험제도를 도입하고 중앙집권적인 관료체제를 만들었습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에 서양에서는 19세기에서야 도입했던 관료체제를 조선왕조 초기인 15세기에 과거제도를 통한 관료체제를 실행한 것입니다.

 

영상 : <2/4>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료체제가 정립되어 가면서 조선왕조는 명문가, 다시 말하면 양반계층이 지배하는 귀족주의적인 특이한 정치구조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조선왕조 500년 동안 그대로 이어지면서 그로 인하여 뿌리 깊게 박힌 문벌 족벌 체제가 성립했습니다. 조선왕조의 가장 악질적인 유산은 명망가 지배체제의 엘리티즘(Elitism) 전통입니다.

 

유교적 혁명의 한계

① 왕정지속 ② 카스트 제도 ③ 일반관료의 권위주의 ④ 인간 평등관의 미흡

 

 

나는 초등학교와 대학(고려대) 동문회, 고향인 천안향우회, 광산(光山)김씨 종친회 등에 한번도 가본 일이 없습니다. 족보에 이름도 빠져있습니다. 하바드 대학 동문회나 보성고등학교 동문회에도 가본 일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내 고향 천안에서 강의를 해 달라 해도 못 갑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욕을 먹고 있는지 아십니까? 도올이 이렇게 살아온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피눈물 나는 반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는 현명했습니다.

양반이라 했을 때, 양반신분은 그냥 보전된 것이 아닙니다. 양반이라도 3대에 걸쳐 과거급제를 못하면 별 볼일 없는 향반(鄕班)으로 전락해서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유리됩니다.

조선왕조에 제대로 된 관직은 200여개 정도였는데, 이 자리를 얻기 위해 전국에서 과거에 응시했습니다.

과거는 사람을 뽑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 일 뿐이었으며, (이런) 과거의 악폐는 조선조 500년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조선왕조 500년은 과거(科擧)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조선조 초기에는 여자에게도 상속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자상속의 종법제도는 17세기 중기 임란 후부터 급속히 발전한 것입니다. 종법제도는 임란 이후에 강화되었고, 우리 사회는 종법사회로 변해갔습니다. (장자상속은) 한 집안에서 장자에게 재산을 몰아주어 과거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치열한 종법사회로 변해 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科擧)에서와 같이 과외(課外)까지 하여 서울대학을 못 들어가면 과거급제자를 내지 못한 집안과 같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내 자식만큼은 번듯한 대학에 가야 할 텐데 과외를 안 하고도 되는가?"라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과외 받지 않고 비실비실 놀기만 하는 별 볼일 없는 놈이 출세하는 시대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나도 서울대학 못 가서 한이 되었던 놈 중의 하나입니다. 서울대학 수원 농대에 떨어진 놈이니까, 아마 그때 합격했었더라면 지금쯤은 농장을 경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왜 대만대학을 가고, 동경대학을 가고, 하바드대학을 가고, 그렇게 10여년에 걸쳐 온갖 고생을 하며 좋은 대학을 찾아 다녀야 했던가?

고려대학 나온 학벌만 가지고는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지만, 처절한 반성을 했습니다.

내가 왜 거기 가서 공부를 해야 했던가..!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일, 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명망가 지배전통'에 대해서 우리는 근원적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집안이 좋고 좋은 학교 나왔다고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사의 문벌중심, 학벌중심, 이런 문벌과 학벌 따위가 탁월한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로부터 근원적인 붕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들이 이 붕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아직도 조선왕조의 과거(科擧)중심 체제로 모든 것이 발탁되었던 관료체제가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눈물 나는 과외를 시켜서 내 자식을 서울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는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한 문벌 있는 집안에, 제대로 된 집에, 원하지도 않던 며느리가 덜컥 들어왔습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아들하고 결혼을 해버렸다고요. 그 며느리가 집안도 학벌도 별 볼일 없고 인물도 별 것 없고 돈도 없는데다가 똘똘하고 말도 잘한다면 시어머니가 그 며느리를 얼마나 보기 싫어할까요?

 

여러분들도 그런 시집살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누라도 시집살이 많이 했어요. 저 어마어마한 시어머니의 권리는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오직 아들 하나 갖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선거라는 제도는 묘합니다.

50대 50에서 한 표라도 많으면 이기는 것인데, 진 사람들이 '졌다'고 생각할까요?

'한 표만 더 있었으면 이긴 것'

51이 못된 49가 얼마나 분노와 저주의 세월을 보내겠습니까? 이것은 아주 적나라한 인간의 현실을 내가 여러분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이 문제의 본질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논리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나는 사단(四端), 칠정(七情)을 강의했습니다.

퇴계는 4단, 7정은 모두 정(情)이라 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 4단이라는 것은 7정에 오락가락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의지는 근원적인 절대적인 자아로써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퇴계의 리발론(理發論)입니다.

 

퇴계(退溪)의 리발론(理發論)

 

夫四端情也(부사단정야), 七情亦情也(칠정역정야), 均是情也(균시정야)

<퇴계> : 사단은 정이다. 칠정 또한 정이다. 사단과 칠정이 똑같은 정이다.

 

선험적 도덕 본성이 자발적 주체로서 인간에 내재한다는 것. 퇴계의 리발은 서양 근세철학이 선험적 자아(Transcendental Ego)를 추구한 것에 상응하는 노력이다.

 

 

이율곡→기대승→송시열→권상하로 이어지는 주기론은 리(理)를 기(氣)의 조리(條理)로 환원시켰습니다.

 

發而皆中節 (발이개중절)

사단은 칠정 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칠정이 발하여 상황에 잘 들어맞는 상태일 뿐이다.

 

조선유학의 근원적인 문제는 "우리 인간을 감정의 주체"로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감정이 이성보다 더 본질적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영상 : <3/4>

 

 

조선유학이 추구하려 했던 것은 '감정적으로 과불급(過不及)이 없고 치우침이 없는 인간으로서 공공의 도덕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선비가 해야 하고, 사대부가 해야 하고. 민중의 지도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래야만 우리민족이 사회적 질서를 지키고 양심 있고 질서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근대문명의 출발이라는 것은 이성이 주체가 되는 인간이었습니다.

 

합리주의(Rationalism)

 

인간의 본질은 이성(理性:Reason)에 합(合)하는 삶에 있다. 이성은 수학적 이성: 1+1=2. 즉, 인간의 계산능력을 말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

 

 

서구의 근대 이성은 수학적 이성을 말합니다.

희랍인들은 수학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고등수학은 희랍인들의 논리학과 연역적 사고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수학을 하는 인간의 능력을 이성이라고 불렀습니다.

1+1=2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인간의 이성의 법칙이며 절대 불변입니다. 이러한 모든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질서가 머리에 들어있는 인간을 이성적 인간이라 하고 이런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를 이성적, 합리적 사회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사회는 1+1=2가 되는 것이 아니고 1+1=1000이 되었다가 '차떼기'도 되는 사회입니다. 분명히 합리적 사회가 아닙니다.

지난 세기, 즉 20세기를 통해서 서구 과학문명이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읽고자 했던 '기학(氣學)이 있었는데 이 기학이라는 사상에 서양과학이 들어옵니다. <기학:氣學 : 19세기 조선의 과학자 최한기(崔漢綺)가 1857년 지은 책>

 

(지난) 1세기 동안 세계가 말했던 인간의 정감에 대한 리(理)는 원래 도덕적 리(理)였습니다. 그 도덕적 리를 합리적 리로 바꾸려고 노력한 것이 20세기였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수학을 해요! 수학 못하면 서울대 못가요!' 이런 유인책을 써서라도 과학을 배우려 했던 것이 20세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위대한 수학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양의 합리주의를 배운 것입니다. 19세기 말에는 우리나라에 수학자도 과학자도 없었습니다. 동양문명에 수학이 없었다는 것, 고등수학이 없었다는 것이 서양문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도덕적 리와 합리적 리가 합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아직도 감정적 이성(理性: Emotional Rationality)에 치우쳐 있습니다.

우리는 서양의 과학정신을 보다 더 철저하게 배워야 합니다. (감정적 이성에 치우쳐 있으면) '노무현이'가 보기 싫으면 무조건 보기 싫은 것입니다. 거기에는 합리적 질서가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무조건 싫은 것 (뿐)입니다.

 

고려 말엽에 그랬듯이 오늘의 우리사회에도 끊임없이 민주에 대한 갈망이 있어왔습니다. 조선왕조 당시 문벌 귀족의 지배체제 하에서는 도저히 민중을 구출할 수 있는 어떤 제도적 장치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유교적 민본사상의 최대 허점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까지의 모든 사상적 물줄기는 기본적으로 조선사회의 신분적 구조를 뒤흔드는 발상은 되지 못했습니다. 목민의 수정(修正), 개선(改善)만으로도 조선왕조가 지속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것을 근원적으로 뒤엎지 않는 이상에는 우리 민족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중국의 아편전쟁 이후부터입니다.

 

아편전쟁(1840~18420)

 

아편 금수(禁輸) 문제를 계기로 일어난 영청(英淸:영국과 청나라) 간의 전쟁에서 중국(청나라)의 패배는 조선인들에게는 세계의 종식을 의미하는 대사건이었다.

 

 

최 수운은 아편전쟁 통해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질서가 붕괴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곧 붕괴되겠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을 때 이런 위기를 느낀 사람이 바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 동학의 창시자)입니다. 그는 대단한 학식을 소유한 유학자였습니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는 20대에서 30대까지 10년간에 걸쳐 행상(行商)으로 천하를 주유하면서 조선의 실정을 꿰뚫고 서학의 정체를 깨닫는 한편, 1860년에 득도하게 됩니다

 

수운은 서학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수운이 발견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천주라는 것이 우리 민중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천주야 말로 주자학에서 리(理)가 인간에 대해 군림하게 됨으로써 너무 과격하게 수직적 존재의 구조로써 인간을 억압했듯이, (서학의 '천주' 또한)인간 위에 군림하는 상제(上帝)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운의 관심은 이 수직적 구조를 수평적 평등관계로 개벽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운의 제자인 '해월'의 법설에 의하면

 

자차이후(自此以後) 오도지내(吾道之內) 일체물별반상(一切勿別班常) 아국지내 (我國之內) 양유대폐풍(兩有大弊風) 일칙적서지별(一則嫡庶之別) 적서지별 (嫡庶之別) 망가지본(亡家之本) 반상지별(班常之別) 망국지본(亡國之本) 차시오국지내고질야(此是吾國之內痼疾也)

지금부터 우리의 도(道 = 동학)에는 일체의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없다.

우리나라에 두 가지 폐풍(弊風 = 폐단의 풍조)이 있는데, 하나는 적서(嫡庶)의 차별이며 적서의 차별은 망가(亡家)의 근원이요, 그 다음은 반상(班常)의 차별이며 반상의 차별은 망국의 근원이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이다.

 

득도 후 최 수운은 자기가 거느리던 두 노비 가운데 하나는 양딸로, 하나는 맏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이런 것은 그 당시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동학은 인간평등에 깊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시천주(侍天主)의 존재라고 생각했으며 인간 개개인은 모두 하느님이었습니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느님이다', 여기에 무슨 반상(班常)의 구별이 있고 적서(嫡庶)의 차별이 있겠습니까?

 

나 도올은 제대로 된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내가 살아온 과정은 철저한 엘리트 코스였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고 이 땅의 선비로서의 모든 자격을 갖추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나 도올은) 이 땅에서 엘리트라는 자부심을 버리지 않습니다.

중앙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너희들을 자격 있는 엘리트로 만들려고 교육한다. 여러분은 훌륭한 대학교육을 받아서 훌륭한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인생에 있어서 달성해야 할 목표는 바로 엘리트로서 엘리티즘을 과감하게 통제하는 데 있다."고 역설합니다.

오늘의 탄핵 정국은 엘리티즘을 고수하는 엘리트 집단의 시대착오적 역사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영상 : <4/4)

 

 

문명의 축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입니다.

 

(우리 문명의 축이 변화되는데) 300년이 걸릴 것 같았는데, 이제 꼭 절반 왔습니다.

1860년에 수운이 득도하고, 그 전에 혜강 최한기라는 분이 1857년에 <기학>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로부터 150년 동안에 우리는 무척이나 근원적으로 우리 사유를 짓밟고 있는 구조에 대한 변화를 열망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변화를 좌절시켜온 역사였습니다. 일제를 생각해봅시다.

 

고려의 '불교 축'에서 조선의 '유교 축'으로, 조선의 '왕정 축'에서 대한민국의 '민주 축'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20세기는 동학에서 말하는 시천주(侍天主)적인 민주의 열망이 끊임없이 확충되기도 하고 이따금씩 좌절되기도 한 역사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후 돌아갈 집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일제식민지는 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일본 놈의 나라였습니다. 그때의 비극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제 식민지의 역사는 자기 배반과 자기모순의 역사였습니다. 일제는 우리에게서 공공의 의식(Public Consciousness)을 앗아갔습니다. 우리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았습니다. 울타리 바깥은 남의 나라요, (거기에는) 일본 순사가 다녔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순사 온다." 하면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쳤습니다. 일제는 모든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조선 시대의 문벌주의, 귀족주의, 양반지배구조는 일제시대에 와서 옹졸한 가족주의로 응결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겐 해방이 없었습니다. 우리 힘으로 쟁취했을 때만이 해방인 것입니다. 8.15해방은 (우리가 쟁취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8.15해방 후까지도 일제에서 생겨난 모든 악습과 악폐가 존속했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소 냉전체제 하에서만 생존을 모색할 수 있었다.

 

단군이래 우리 역사에서 이승만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은 없었습니다. 자기에게 항거하는 모든 사람을 다 죽였습니다. 내가 어릴 적, 조봉암 선생이 사형을 당했을 때, 정치와 무관한 의사이셨던 아버지께서 "아까운 사람 또 한사람 죽였구나.."라고 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러한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그것(일제로부터의 모든 악습과 악폐의 위에 군림하는 살인정권)이 군사독재로 이어졌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우리 역사의 내재적인 요소로 만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여기에 금권이 결탁하고, 정치가 결탁해서 온갖 부패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패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600년의 유교혁명이 일으켜 놓은 이러한 패러다임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우리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인식에 대해 지금 모든 국민이 합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회가 진정하게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대의기관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국민적 합의에 대해서 응당한 대의절차를 밟아야만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다수의 의사를 대변하지 않은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은 악폐와 결탁한 정치의 모습이다)

 

저는 그것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파나 정당이 의석 수를 얼마나 확보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우리 역사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부패는 하루아침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600년 동안 고질화되어 왔습니다. 이런 현상이 유교적 혁명의 단절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또다시 근원적으로 뒤엎어야 할 (혁명의) 시대에 와있으며, (이 혁명의) 단초는 동학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동학의 혁명이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하는 이러한 의식 속에서 오늘의 탄핵정국을 이해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오늘 강의의 전부입니다.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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