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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2.19 도올 김용옥 - 우리는 누구인가 제7강 ' 조선경국전 '

조선경국전 (朝鮮經國典)

조선경국전 (朝鮮經國典)

조선경국전은 상하 2권의 필사본이다. 조선왕조의 헌법(憲法)이라 할 수 있는 책으로서 개국 초 정도전(鄭道傳)이 지었으며 '경국전(經國典)'이라고도 한다. '삼봉집(三峯集 권 7, 8'에도 수록되어 있다.

예(禮)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항상 변하는 것이다.

혼인 청첩장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이름을 쓰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살아 계시던 돌아 가셨던 부모님은 변함없는 부모님일 뿐이다. 살아있는 청첩인만 따로 밝히면 된다.

태묘(太廟)

주나라의 시조 격인 주공(周公) 단(旦)과 그 아들을 모신 사당. 이 사당이 노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공자는 주나라의 적통인물로서 자처했다.

자문지 왈(子聞之 曰) 시예야(是禮也)

공자가 듣고 말하기를 "이것(묻는 것)이 바로 禮다."

禮란 묻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예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며, 禮가 사람을 구속할 수는 없다. 禮는 동적 과정(dynamic process)인 것이다.

좌묘우사(左廟右社)

왕이 앉은 자리 왼쪽에 종묘를 두고 오른 족에 사직을 둔다.

사직단을 사직공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로마의 성베드로 사원을 베드로 공원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일본식민지 하의 '조선얼 말살정책'이 남아 있는 예다.

종묘사직이란 곧 국가를 말한다. 정도전이 설계하고 만들었다.

종묘(宗廟) 조상숭배 : 수직적(vertical)

사직(社稷) 국토숭배 : 수평적(horizontal)

사(社)=(示:신)+(土:땅)=땅의 신

민간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으뜸 가는 신은 땅의 신이었다. 땅은 생명의 근원이다. 우주생명이 곧 하느님이다. 사직단을 우리민족 최고 의 성전이다.

사직(社稷)이 최고의 신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나라를 '종묘사직'이라고 부른 것이다. 유교국가의 국교(國敎)를 말한다면 사직 이상이 없다. 오늘날 사직의 존엄성이 훼손된 것은 통탄할 일이다.

조선경국전 <1/4>

맹자(孟子)는 종교의 최고 신도 인간이 갈아 치울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변치(變置)의 논리는 백성(민)은 갈아 치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下

孟子曰民爲貴(맹자왈민위귀) 맹자가 이르기를 백성은 귀중하고

社稷次之(사직차지) 사직은 그 다음 가고

君爲輕(군위경) 제후(왕)는 대단치 않다.

是故(시고) 그렇기 때문에

得乎丘民(득호구민) 밭일 하는 백성들의 마음에 들게 되면

而爲天子(이위천자) 천자가 되고

得乎天子爲諸侯(득호천자위제후) 천자의 마음에 들면 제후가 되고

得乎諸侯爲大夫(득호제후위대부) 제후의 마음에 들면 대부가 된다

諸侯危社稷(제후위사직) 제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면

則變置(즉변치) 갈아 치우고

犧牲旣成(희생기성) 희생의 제물이 살찌게 마련되고

盛旣潔(자성기결) 제물로 괴어 놓은 곡식이 깨끗하게 마련되고

祭祀以時(제사이시) 제사를 제 때에 지내는데

然而旱乾水溢(연이한건수일) 그래도 한발과 수해가 나면

則變置社稷(즉변치사직) 사직을 갈아 치운다

유교적 합리주의 (儒敎的 合理主義 Confucian rationalism)

유교적 합리주의는 모든 종교적 권위 조차도 불복하는 민본사상이다.

유교는 통치자들이 종교를 빙자하여 백성을 기만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儒敎는 윤리며, 교육이며, 상식의 합의일 뿐이다.

제도적 종교에 구애 받지 않고도 인간은 얼마든지 종교생활을 할 수 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닌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뛰어 넘는 상식의 종교다.

한국인의 극단적 종교성향에도 불구하고 종교갈등이나 종교전쟁이 없는 것은 유교적 합리주의의 상식적 전제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칼맑스 : 계급 없는 사회 (class-less society)

정도전 : 종교 없는 사회 (religionless society)

儒敎的 合理主義는 과거가 아니라 인류의 영원한 과제상황(perennial theme)이다.

然所謂得其心者(연소위득기심자)

그렇다면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非以私意苟且爲之也(비이사의구차위지야)

사사로운 뜻을 가지고서 구차하게 백성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니

非以違道于譽而致之也(비이위도우예이치지야)

도를 어기면서까지 명예를 구하는 그런 치사한 짓을 하지 말라 (명신 익(益)이 순(舜) 임금에게 간언한 내용으로써, 서경(書經)에 나온다.)

亦曰仁而已矣(역왈인이이의)

인이란 무엇인가

人君以天地生物之心爲心(인군이천지생물지심위심)

천지가 모든 만물을 생하는 것으로써 내 마음으로 삼고

行不忍人之政(행불인인지정)

사람이기 때문에 차마 어찌할 수 없는 마음으로 정치를 한다

 

통치자의 인(忍)한 마음은 천지의 생물지심과 같은 것이다.

불인(不忍)이란 차마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말한다.

조선경국전 <2/4>

맹자가 성선(性善)을 입증하기 위하여 유자입정(孺子入井:어린이가 아무 생각없이 엉금엉금 우물로 기어 가고 있다)을 보기로 들었다.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맹자왈 인개유불인인지심)

맹자가 이르기를 인간들에게는 차마 어찌하지 못할 마음을 가지고 있다

皆有惻隱之心(개유출척측은지심)

누구나 깜짝 놀라는 측은지심을 내는데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비소이내교어유자지부모야)

그런 측은지심이 나는 것은 그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한 것도 아니고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비소이요예어향당붕우야)

향당(동네사람들)과 교분을 맺어 명예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非惡耳聲而然也(비오이성이연야)

잔인하다는 명성이 듣기 싫어서도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러 나오는 것이다

 

程子曰(정자왈)

정자가 이르기를

滿腔子是惻隱之心(만강자시측은지심)

인간의 창자에는 가득 찬 것이 측은지심이다

使天下四境之人(사천하사경지인)

천하 사경의 모든 사람들이

皆悅而仰之若父母(개열이앙지약부모)

자기 부모를 믿고 따르듯이 우러러 보고 기뻐할 것이다

則長享安富尊榮之樂(칙장향안부존영지락)

그렇게 되면, 안부존영지락은 길이길이 누리게 될 것이요

而無危亡覆墜之患矣(이무위망복추지환의)

거꾸러지고 넘어지는 그러한 걱정이 없게 될 것이다

 

守仁以仁(수인이인) 不亦宜乎(불역의호)

인을 인으로써 지킨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恭惟(공유) 主上殿下(주상전하)

우리의 주상전하께서는

順天應人(순천응인)

하늘의 뜻에 따르고 백성들의 요구에 응하여

驟正寶位(취정보위)

그 보위를 빨리 바르게 할 수 있었다

 

순천응인(順天應人)

조선왕조의 혁명이 무력적 전복이 아니라 합법적 절차에 의한 순리적 과정이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구문

공민왕(恭愍王 1351~1374 재위)

고려 제31대 왕으로써 개혁에 힘썼으나 집권 말기에는 실정을 거듭하였고 퇴폐적인 삶을 살다가 불행하게 살해되었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미상~1365)

몽골여자. 본명은 보탑실리. 1365년(공민왕 14년)에 출산 중 사망했다. 노국대장공주가 죽고 난 후 실의에 빠진 공민왕은 귀족의 아들들로 구성된 김홍경, 홍윤 등과 변태적이고 난삽한 음행을 일삼았다.

익비 한씨는 공민왕의 협박에 의해 홍륜, 한안에게 강간 당하여 아기를 낳았다. 익비의 아이를 자기 자식인 것 처럼 꾸미기 위해 그들을 해하려 하자 내시 최만생, 홍윤 일당이 침전에 만취 상태로 잠들어 있는 공민왕을 살해한다.

공민왕의 사당이 조선왕조의 종묘 안에 모셔져 있는 것은 조선왕조의 개창이 고려왕조의 선양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1393년 공민왕의 부인 정비(定妃) 안씨가 이성계 옹립의 전교를 내렸다.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1388)

이성계가 명나라를 치러 갔던 10만 대군을 철수 시킨 사건. 이로서 고려왕조 멸망의 대세가 결정되었다.

위화도 회군의 4대 명분

명나라에 대항하는 것은 외교적 오판 농번기 왜구의 침입을 유도 전염병

위화도 회군으로 죽음의 전쟁터로 끌려 나갔던 10만명의 청년과 그 가족들은 환호하였고 이성계는 크게 민심을 얻었다.

이성계의 혁명 성공은 고령왕조의 실정에 항거한 농민군사의 지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농민봉기이기도 했다.

정비 안씨(定妃 安氏)

죽성군 안극인의 딸. 공민왕이 강간시키려 했지만 자살로 위협하여 몸을 지켰다. 이성계에게 선양의 전교를 내렸으며 조선왕조 개창 후에도 살아 남았다.

조선왕조의 혁명은 방벌(放伐)이 아닌 선양(禪讓)이었다.

정도전, 조준, 남은 등 50여 명의 대소신료들이 공양왕으로부터 옥새를 받아 내어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가 보위에 오를 것을 간청한다. 이성계는 세번을 고사한 후에 이 청을 받아 들인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고려왕조의 최고 정무기관. 이성계의 추대를 인준했다.

선양 → 추대 → 인준

이렇게 하여 조선왕조는 세계 혁명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지식인 집단에 의한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무혈혁명으로 추진되었으며, 1392년 7월 17일, 개성 수정궁에서 이성계가 옥좌에 앉음으로써 개창되었다.

조선왕조 성립은 권력의지를 가진 개인의 혁명이 아니라 사회개혁의 시대적 요구를 실현한 사상가 그룹에 의한 집단적 혁명인 것이다.

 

恭惟主上殿下(공유주상전하) 順天應人(순천응인) 驟正寶位(취정보위)

우리의 주상전하께서는 순천응인 했으니 그 보위를 빨리 바르게 할 수 있었다

知仁爲心德之全(지인위심덕지전)

인이 심덕의 온전함이 되는 걸 알고

愛乃仁之所發(애내인지소발)

모든 백성을 사랑한다함은 인을 아낀다는 것에서 출발한다(愛 = 사랑한다<X> 아낀다<O>)

 

於是正其心以體乎仁(어시정기심이체호인)

이와 같이 몸으로써 그 마음을 바르게 함이 인이다

推其愛以及於人(추기애이급어인) 仁之體立而仁之用行矣(인지체립이인지용행의)

그 아끼는 마음을 백성에게 미치게 하면 인의 본체가 서고 인의 쓰임이 행하여졌다

嗚呼(오호) 保位其位(보위기위) 以延千萬世之傳(이연천만세지전)

不信歟(거불신여)

오! 그 위를 유지하여 천만세에 뻗혀 전하여질 것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으리오

조선경국전 <3/4>

체(體) : 본체적 측면

용(用) : 기능적 측면

조선왕조의 500년 장수(longevity)는 단순히 행운의 결과는 아니다. 그 내면에 장수를 가능하게 한 합리적 질서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조선왕조의 패러다임은 500년 동안 그 나름대로 잘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이 지난 19세기말부터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여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변혁의 시기에 들어서 있다.

우리는 이러한 대변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정도전이 고민했던 그와 같은 혁명의 기운이 지금 우리사회에도 똑같이 있다고 생각할 적에, 앞으로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또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가 개척해 나갈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위대한 과업을 위해서 과거 이러한 분들의 생각을 우리가 한번 더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는 정도전이 구체적으로 불교를 어떻게 비판했는가? 정도전이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불씨잡변'이라는 위대한 논술을 살펴 보기로 한다.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단순한 종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고려라고 하는 썩은 체제를 유지했던 모든 부패세력의 근원으로서의 불교적 사유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리지 않으면 조선왕조가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조선경국전 <4/4>

Posted by 망중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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