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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우방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미국의 주도 하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로 현재까지 한미동맹은 불가침의 맹약이 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적어도 30% 이상은 미국에 대하여 맹신에 가까운 신뢰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핵우산의 명분 하에 미국은 대한민국과 맹방 관계를 유지해 왔고 한미일 우호관계 및 군사적 동맹관계를 통해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강화, 유지해 왔다.

미국과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방 중의 우방, 즉 맹방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미국이 한반도와 조선 및 대한민국 국민들의 주권과 이익에 헌신적이거나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대표적인 사건을 꼽자면,

첫째, 1905 7월에 일본과 미국이 체결한 밀약,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밀약의 내용은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인한다.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1905년 일본은 국제적으로 조선 지배를 인정받은 후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침탈하였다.

둘째, 1980년의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태도다.

광주에서 첫 집단 발포가 벌어진 직후에 미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모인 이른바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철저히 미국의 안보 논리에 의해서 진행됐고 미국은 그 직전에 있었던 신군부의 발포행위를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이를 '시민군에 대한 사형선고' 라고 표현했다. 셋째, 2016년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

집요한 미국의 압력과 일본의 요구에 의해 피해당사자인 일본군 위안부들과 국민적 합의와 국회비준 등의 합리적 절차가 철저히 무시된 채 체결된 이 합의는 국론을 극단적으로 분열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위의 세가지 사건 이외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들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우방이란 철저하게 각기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만큼 협력한다는 의미다.

그 관계의 이면에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운 불균형의 비대칭 관계가 도사리고 있고, 정권의 정통성이 취약할수록 불균형으로 인한 양국 간의 득실 편차는 커질 수 밖에 없다.

 

균형외교’, ‘외교주권을 통해 국익을 실현하고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정권의 정통성과 함께 국민의 주권의식이 먼저 탄탄해져야만 한다.

주권의식이 탄탄해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수 요소다.

 

 

 

우연인지 의도적인지…'코드명 체로키'

 

 

 

미국시각 1980 5 22일 오후 4시 미 백악관 상황실.

 

광주에서 첫 집단 발포가 벌어진 직후에 미국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모인 이른바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는 철저히 미국의 안보 논리에 의해서 진행됐고 미국은 그 직전에 있었던 신군부의 발포행위를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시민군에 대한 사형선고' 라고 표현했습니다. 광주 시민의 생사를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 회의에 걸린 시간은 불과 75분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광주 시민들은 하루만 더 버티면 미국이 도우러 올 것이라고 믿었으니아이러니, 즉 예상과는 반대의 비극적 결말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던 셈입니다…..

▶JTBC 보기

 

 

 

아직도 미국은 우방인가?

 

▲ 제27대 미국 대통령 윌리엄 태프트. (1908) (이미지 출처 = ko.wikipedia.org)

 

 

다시 한번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이야기해 보자. 1905 7월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는 도쿄에서 일본 총리 가쓰라와 비밀리에 만나 중요한 밀약 하나를 체결하였다. 미국에서는 비밀합의(Secret Agreement)라 하고 일본에서는 협정(協定)이라고 하는 이 밀약에서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식민 통치를 인정하고 미국은 일본의 한국 보호권을 인정한다고 상호 합의했다. 체중 148킬로그램의 코끼리 같은 태프트는 1901년부터 1904년까지 필리핀 초대 총독을 지낸 막무가내의 보수주의자였다.

 

바로 그 다음 달인 8월 미국 뉴햄프셔 주 포츠머스에서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와는 다른 사람)이 주선하여 러일전쟁의 막을 내리는 이른바 러시아와 일본 간의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되었다. 러시아로서는 패전에 따른 치욕적인 조약이었는데 이 조약에도 역시 러시아는 일본의 한국 지배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뼈아픈 이 조약의 주선자 시어도어 루스벨트 뒤에 막후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역시 저 코끼리 인간 태프트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조약을 중재했다는 공으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미 청나라는 188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조선에 대한 개입권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은 1905 11월 소위 을사늑약을 거침없이 밀어붙여 사실상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말았다. 한국을 필리핀과 바꾸어 일본에 팔아먹은 주역 태프트는 필리핀 식민통치 등에 따른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1908년 제2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나라 형세를 외세에 의존하는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사드를 둘러싼 현금의 중미 갈등은 잠시 어른거리다 사라질 일시적 환경이 아니다. 이것은 거칠게 전개될 향후 천 년의 불길한 서곡임을 알아야 한다. 건국 70년을 코앞에 둔 대한민국. 정말 정신 차리고 자주성을 갖춘 당당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드 배치 여부는 긴 역사의 단추를 새로운 천 년 동안 바로 꿰느냐 마느냐 하는 엄중한 과제에 그 첫 단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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